[열린광장] 연극 ‘OUR TOWN’
문화기획사 ‘에이콤’이 한인 사회에서 문화 활동을 시작한 지 올해로 35년이 되었다. 얼마 전 에이콤에서 펴낸 ‘사막에서 연극을 만나다’에 수록된 117편의 공연기획 연보를 보면서 ‘나는 문화기획자로서 가슴 뛰는 공연을 얼마나 기획했는가?’ 스스로 물어보며 지난날을 반추했다. 누구나 첫사랑의 추억을 간직하듯 나는 미국에서의 첫 공연작을 기억한다. 내가 참여한 작품은 1988년 8월 윌셔이벨극장에서 막을 올렸던 퓰리처 수상 작가 손턴 와일더의 3막짜리 희곡 ‘Our Town(우리 읍내)’이다. UC 버클리에서 연극을 전공하던 김석만(전 한예종 연극원 교수)을 중심으로 1978년 발족한 ‘모임극회’가 창립 10주년 기념으로 의미 있는 공연을 준비하자고 모인 자리에 기획자로 참여한 것이 계기였다. 나에게는 한인 사회 문화 활동의 시작이었다. 그 당시 리틀도쿄에서 발생한 갱단 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던 한인 청소년 백광흠을 돕던 ‘Friends of K. Beak’을 후원하는 공연으로 하자는 데 뜻을 모으고 출연자와 스태프는 모두 재능 기부로 참여했다. 이 연극은 미국 중고교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연극이었다. 이에 착안해 공연 날짜는 방학인 8월 초로, 공연 장소는 한인들이 잘 아는 윌셔이벨극장에서 사흘간 막을 올리기로 했다. 제작비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용기가 났는지, 지금 생각하면 젊음과 열정만으로 도전한 듯하다. 연극은 1900년대 초 뉴햄프셔 주의 그로버즈 코너즈라는 지역 주민들의 삶과 사랑, 결혼 그리고 죽음 등을 다룬 작품이다. 연출은 한국에서부터 활동한 정호영 선배가 맡았으며 남녀 주인공인 조지 깁스 역과 에밀리 역에는 미국 TV 드라마 ‘MASH’에도 출연했던 백광호와 모 신문사의 문화부 여기자를 어렵게 캐스팅했다. 워낙 많은 배우가 등장하는 연극이다 보니 배우와 스태프 일을 병행한 단원도 많았다. 조연출과 장의사 역에는 한대호, 무대 디자인과 윌리어드 교수 역에는 박준성, 음향과 죽은 자 A 역에는 이종천, 나도 기획 책임과 성가대 지휘자 사이먼 스팀스 역을 맡았다. 이 외에 지금은 한국에서 연기자로 활동 중인 한상혁,박진영과 이희경, 백효경, 쥴리아 리, 전원희, 브라이언 김, 김강국, 구본후, 박대영, 전후암, 허봉희, 김동포 등 ‘모임극회’ 단원들이 주요 배역으로 참여하였고, 웹 편집국장 역의 석종민(현 목사)은 아들 크리스트퍼와 함께 무대에 서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당시 10살이었던 크리스트퍼는 이제 45세 중년이 되었으며 LAPD 경찰관으로 일하고 있다. 한인 사회에 공연문화가 자리 잡지 못했던 시절임에도‘Our Town’은 3일간 2500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등 뜨거운 성원 속에 막을 내렸다. 그때 모 신문사의 LA특파원은 연극의 규모와 관객들의 반응에 놀라며 한국에 특집기사를 전송하기도 했다. 우리는 약속대로 공연 수익금 모두를 ‘Friends of K, Beak’에 전달했다. 연극 ‘Our Town’은 관객, 출연자,스태프 모두 보람을 느꼈던 35년 전 한인 사회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이광진 / 문화기획사 에이콤 대표열린광장 연극 town 연극원 교수 공연기획 연보 our town